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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칼럼 | 멈춰 버린 기억의 저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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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원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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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병든 아내를 간호하다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한 자식들의 권유로 아내를 요양원에 입소시킨 남편은 발걸음이 안 떨어져 자꾸 뒤돌아보며 염려스러운 마음과 끝까지 내가 돌볼 껄 하는 자책에 눈물 글썽이십니다.

자신을 두고 간 남편에 대한 섭섭함과 그리움, 아무리 저희들이 잘한다 한들 남편만큼 살갑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자꾸 뒤돌아보며 들어가라 손을 흔드시는 남편의 애잔한 뒷모습을 보며 오늘 밤 자책감과 염려로 잠 못 이루실 것이 염려되어 어서 가시라 손 흔들며 저희도 웁니다. 남편의 애잔한 뒷모습과 남겨진 아내의 그리움이 모두를 숙연하게 합니다.

치매가 심하셔서 자녀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제 손이 차다고 늘 염려하시더니 오후에 제 손을 잡으시고는 “시간이 지나도 손의 변화가 없으니 일이 힘이 드신가 봅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는 눈길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은 병들어 자식도 못 알아보지만 자식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시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 어르신들 눈동자는 저를 보고 있지만 눈동자 저 편 깊숙한 곳의 기억은 어딘가에 멈춰있습니다. 멈춰 버린 기억의 저 편이 고향마을 시골장터인 어르신은 자꾸 무언가를 사고 계십니다. 의학적으로 멈춰 버린 기억의 저 편을 완전히 돌려놓을 수 는 없겠지만 이곳에서의 일상들이 고향마을에서의 시간처럼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르신들 젊은 시절 고향마을의 시간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힘이 들었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힘든 줄 모르고 하루하루 바쁘게 사셨겟지요.

그렇게 이곳에서의 일상도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의 노년기도 하루하루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남편의 애잔함도 아내의 서운함도 모두 읽어 본인의 아픈 몸보다는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봐 걱정하느라 마음 아픈 우리 어르신들께는 어르신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받는 돌봄의 실천을, 부모님을 가정에서 부양하지 못함이 죄스러운 마음이 드는 가족들께는 전문적인 돌봄의 실천을 통한 위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년기를 직접 겪어 보지 못한 제가 노년기의 심리 상태를 간접 경험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노년에 대한 이해이기 보다는 오해로 비롯된 선입견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얼마 전 유행했던 광고의 대사처럼 우리 어르신들이 제게 “니들이 노년을 알아?”라고 반문하실까봐 조심스러운 마음입니다.

어르신들에 대한 돌봄이 미래에 내가 노년이 되어서 받고 싶은 돌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대화는 동문서답입니다.

할아버지:“할머니 고향은 어디유? ”

할머니 : “나 밥 안먹었어”

보는 사람은 답답하지만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셨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 가십니다.우리 어르신들 각자 멈춰 버린 기억 저편의 이야기를 나누시며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계신 듯 합니다. 이런 어르신들의 모습도, 어르신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직원들의 모습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구립해송노인요양원 원장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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