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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영성] 차가운 계절에 맞는 뜨거운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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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뮌헨 시내, 대림절 풍경)

 

 차가운 계절에 맞는 뜨거운 은혜

 

 입동(立冬)이 계절이 겨울 문턱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찬바람 불고 기온이 떨어지면 장롱 속에 깊이 잠자던 두터운 옷을 꺼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산골에 산짐승들은 도토리며 칡뿌리며 양식이 될만한 것들을 챙겨먹느라 또한 바쁘다. 겨울잠을 자야하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가을에 식욕이 땡기는 이유는 겨울맞이가 그 원인이란다. 추위를 방어해야하는 육체의 자연 현상인데 신기하기까지 하다.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알아서 챙긴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겨울은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썰매나 스키를 즐길 수 있기에 흥미로운 계절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반대의 이미지에 싸여있다.

 

 겨울은 그 어떤 부정적인 힘이 지배하는 상황을 종종 비유한다. 예를 들면 만화영화 <겨울왕국>에서 겨울은 한 여인의 초능력으로 인해 얼음나라로 변해버린 현실을 암시하며, <사자와 마녀와 옷장> (C.S.루이스)에 묘사된 겨울은 마녀에게 지배당한 상황으로 묘사되어있다.

 

 19세기 사랑의 시인으로 알려진 H.하이네, 그의 <도이치란트, 어느 겨울 동화>라는 장시(長詩)에서 독일의 후진적 정치 상황이 마치 겨울같다는 시적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에게 겨울은 차가운 현실에서 따스하고 인간적 온기가 충만한 세계를 기다리는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정신 차릴 틈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신적 구원을 기다린다. 인간 존재가 이 대지에 오기 전 머물렀던 고향, 존재의 본향, 하나님의 품, 그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계를 희구한다. 말로 일일이 표현하지 못하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구원에의 동경, 그 영적 환희가 겨울에 가시화된다. 바로 대강절과 성탄절이 겨울의 절정으로 다가온다. 성육신의 은총이 하얀 눈송이처럼 저 높은 하늘에서 때로는 살며시, 때로는 펑펑 이 땅에 내린다. 이 때 우주적 찬양이 울려 퍼진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차가운 겨울에 이 찬양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이다. 죄 가운데서,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죄와 죽음에 종노릇 하던 인생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축포가 울린다. 사탄의 사슬도 이제는 힘을 잃는다. 노예처럼 살던 시대는 지나갔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이 주어진다,

 

 구원의 징표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더 이상 무거운 심판이 다가오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실현되는 것이다. 조건 없는 주님의 사랑은 우주에 충만해있다. 세상은 그래서 차갑지 않다.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차 있다.

 

 겨울이 춥다는 것은 현상일 뿐이다. 이 겨울 속에 대지를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보다 더 뜨거운 구원의 사랑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모든 것을 꽁꽁 얼게 만드는 냉기보다 더 뜨거운 주님의 심장이 불타오른다. 모든 것을 녹여 버릴만한 그 열기를,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혹여 사람이 그 열기 앞에 이카루스처럼 녹아내리지는 않겠는가. 벌겋게 달아오른 용광로 앞에 한갓 밀랍인형처럼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지는 않겠는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사람을 다치지 않게 구해 내시려고,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게 품에 끌어안으시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 성탄절은 사랑의 뜨거운 포옹이 이글거리는 절기이다. 바깥에는 차디찬 계절, 북풍한설 몰아치는데 갈데 없는 나그네처럼, 황망한 벌판에서 길 잃고 헤매는 방랑객처럼 어리둥절 하는데, 어두운 밤에 환한 별빛으로 길 밝혀주시는 은혜가 있는 절기이다.

 

 구원의 주님은 이 겨울에 가난한 인간에게 찾아오신다. 그분은 우리보다 더 가난하게 되셨다. 가난으로 가난을 이기게 하신다. 날이 춥고 어두워질수록 주님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신다. 아니 달려오신다. 사랑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시고...

 

 겨울이라고 추위에 움츠리지 말자. 옷깃은 여미되 가슴은 활짝 열고 우리에게 달려오시는 주님을 만나러 저 대지에 나서자. 낮고 낮은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의 자리보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모두를 품에 안기 원하시는 주 예수께 겸손히 엎드리자.

 

 아기로 오셨다고 깔보고 비웃을 일이 아니다. 성육신에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비우신 케노시스(kenosis), 그리고 낮아지심의 경이로움이 역사하시나니, 어찌 신비롭다 하지 않으리요.

 

 촛불을 하나씩 켜며 대강절 4주를 보내고 맞이하는 성탄절에는 이러한 신적 구원의 신비가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원해본다. 성육신을 맞이할 때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로 들어간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12:34)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

 

 겨울에는 이러한 역설(paradox)과 반전이 들어있다. 추운 계절 겨울에 하나님의 뜨겁고 뜨거운 포옹이 우리를 맞이하니, 어찌 겨울이 춥다고만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임재가 내뿜는 뜨거운 열기 안에서 살아가는 것, 일상에 주신 은혜일지니 이 은총의 절기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 추태화 (이레문화연구소 소장/ 전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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