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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만화 "권력과 신앙" -국론 분열된 한국적 상황에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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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 분열된 한국적 상황에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다

 

만화 출간에 즈음하여..  저자의 … 

 

만화 [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추태화, 1,2에스디지북스 2022)

 

 

1) 원작 2012 

 

만화 [권력과 신앙히틀러 정권과 기독교] (저자추태화그림위성에스디지북스 SDGBOOKS, 2022) 동명의 원작 (추태화, 2012)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2) 스토리보드.. 

 

독일 나치즘의 기독교 정책과 기독교의 반응에 관한 이야기다나치주의는 히틀러로 대표되는데 이는 맞으면서도 틀리다오해와 왜곡이 가미되어 있다나치주의는 무비판적 집단이 일으킨 광기의 이데올로기극우파 파시즘이라 하겠다히틀러 개인이   없는 괴물적 권력의 참혹한 총체적 오작동이었다

(역사상 다시 있어서는 안될 토탈 정치 시스템인데 현재도 지구촌 곳곳에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심각하게 경계해야 한다.) 


당시 1 세계대전  독일은 “제국으로 다시 재기하려는 극우파 민족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이는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선전선동의 대중조작집단무의식집단 히스테리로 확산되더니 급기야 집단 광기로 변질되어 전국을 게르만 신화와 민족주의제국 이데올로기의 광풍으로 몰아 넣었다

여기에 찬성하면 애국자반대저항하면 민족의 배신자 취급 당하는 몰상식이 판치는 세상으로 돌변하였다. 19331월 나치당이 선거에서 승리히틀러가 수상이 되므로 비극은 시작된다민중은 아무 것도 모르고 환호했다

 

3) 권력 투쟁과 희생양 

 

나치주의의 이념은 아리안-게르만족의 제국 건설이라는, 소위 영광스런 제국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민족"이 중심이 되어 모든 사회를 경영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체제 전제통치를 내세웠는데 이는 나치즘 일당독재나중에는 히틀러 독재로 돌변하고 정치기술적 하수인들로 채워졌다

그들의 목표는 정권 탈취와 절대 지배였다. "전체가 개인에 앞선다"는 강령으로 국가 민족 집단이 우선시 되고 개인은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이다

나아가 아리안게르만족 출신이 아니면 모든 공직에서 퇴출되고 (아리안법과 충성 서약)무가치한 생명이라 판단한 이들에게 비인간적 행동을 자행하였다외국인장애인특히 유대인에 대한 잔혹한 행동은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4) 편가르기 전략과 탄압 

 

나치주의자들은 철저하게 나라를 갈라치기 하였다나치찬동자는 내편나치반대자는 네편아군과 적군으로 양분하여권력을  나치주의자들이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나치 정치인당원군인경찰산업체사업체학교 등등 나치가 아니면 활약하기 힘든 구조로 변해갔다


당시 주류를 이루었던 독일 기독교계는 역시 내편네편으로 나뉘어 야합과 저항이라는 비극을 맞는다.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다"는 이론에 굴복한 기독교는 "제국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변질되었고복음에 서서 이에 반대하는 저항기독교인은 "고백교회"(Die Bekennende Kirche, Confessing Church)를 형성했다

 

5) 종교의 정치화정치의 종교화 

 

나치주의자들은 정권을 쟁취하기 위헤기독교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악했다이미 정치를 종교적 대중운동으로작동시키려는 나치는 기독교를 그렇게 이용하였고이에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을 기반으로 합법적 투표라는 빌미를 내세워 점점 권력을 차지해갔다


기독교인은 나치주의자가   없다 복음적 판단은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반나치운동이 일어나게 하였다이들은 기독교를 국가 기관에 종속되는 과정에 반대하였을  아니라 구체적인 저항 운동을 펼쳐나갔다


개신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목사긴급동맹"이 결성되어 전국에서 나치반대 성명을 내며 투쟁에 돌입하였고이어 "바르멘신학선언"을 통해  정당성을 공포하여 고백교회 결성이 구체화 되었다

가톨릭계는 침묵에서 점점 저항으로 정세를 판단하였다당시 교황 피우스 12세는 “타는 근심으로”라 교서를 발표하여 나치주의를 경고하였으며 사제단과 교인들에게 바른 판단력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계열은 이미 제국교회와 고백교회로 나뉘어져 혼란스런 상황에서 복음을 사수하려는 움직임이 각처에서 일어났다

 

6) 저항운동에서 제거작전으로  

 

나치가 정권을 잡는 1933 1월부터 기독교계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나치당이 내세운 아리안법은 사회 모든 영역교계에서도 적용되어 아리안족에 속하지 않으면 퇴출되어야 했다목사도 마찬가지였다이에 수많은 교계지도자들이 항거 항변 하였으나 절대 권력을  나치당을 이길  없었다

이로서 독일 시민 사회교계는 선택해야 했다해외 이민내부 망명(재야에서 침묵방관또는 저항), 야합이 선택지였다의식있는 교인들은 재야에서의 저항을 선택했고 개신교 경우 고백교회를 형성했다이들  “ 양이 있는 곳에 함께 있겠다 믿음으로 해외 망명을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본회퍼 ). 


나치의 탄압이 거세지고비인간적 만행과 전쟁 도발이 이어지자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저항을 넘어 히틀러 암살이라는 악의 제거를 구체화 하였으니 이는 히틀러와  하수인들은 적그리스도(Antichrist)라는 신학적 판단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기독교인들 안에서도 “악의 제거는 살인이라는 딜렘마에 부딛쳤으나 유대인 핍박과 학살을 알게 되면서 악의 중심에 있는히틀러를 적그리스도의  분신이라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쉬츠(P.Schuetz) 목사는 “사탄의 자기부정으로 시대의 혼돈을 경고하였고틸리케(H.Thielicke) 목사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적 상황 지적하였으며본회퍼(D.Bonhoeffer) 목사 역시 그러한 판단에 수긍하였다그가 경고한 “값싼 은혜 지금도 반성해야할 점이다

악의 본성으로 세상을 종말적 상태에 몰아넣던 히틀러여러 암살 작전은 그만 실패하고 만다총통이라 불리던 이는19455 베를린 벙커에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하고 나치의 패망과 함께 정권의 종말을 맞는다.   (>>후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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