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그림자 있는 곳에 반드시 빛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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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그림자 있는 곳에는 반드시 빛도 있다"
 월드컵에 빼앗긴 관객 흡수를 위한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의 소재와 설정은 개신교에게 두 질문을 던졌다. 신에 대한 굳건한 반석 주영수는 딸 혜린이 유괴되자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 <파괴된 사나이>에서 유괴사건을 당
 하고도 교인들 앞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설교를 할 수밖에 없는 목사인 영수가 설교 후 혼잣말로 내뱉은 꽤나 시니컬한 언동은 유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인물이 급격하게 변하는 믿음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포인트라 하지만 개신교
 의 반발이 예상되는 설정이다. 딸을 찾지 못한 그는 목사란 직업을 버리고 비참할 정도로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다. 8년 후, 신에 대한 믿음도 가족도 잃은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살아있다! 8년의 세월을 돌이킬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기도원을 통해 잇속을 챙기려는 기도원 원장에 기생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형사에겐 유목형, 이 인간은 눈에 가시다. 1978년 한 기도원에서 출발한 <이끼>는 철저한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형사 천용덕과 기도원 내에서 대중을 이끄는 유목형, 두 인물의 대립된 이
 야기는 천용덕이 자신의 월권을 이용해 유목형을 감옥에 가두고, 그를 휘어잡기 위해 감옥 내 수감자를 이용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한 상해를 입히나, 그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유목형을 바라보던 천용덕은 유목형과 함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30년 후...감독 특유의
 유머코드로 극의 완급을 조절하며 추악함의 끝을 보여주는 4인방들의 캐릭터는 본 영화의 주제이자 중심이다. 이끼는 겉으로 보기에 작고 부드러운 식물로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엉켜 집단을 이루며 자란다. 가학과 피학이 공존하고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폐쇄적인 공간...

 시사회를 마치고 나온 나에게 "그거 어때?"라는 질문에 재밌는지 없는지 한 마디로 답할 수 없었던 것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 중인 직원의 "실장님 목사님을 왜 저렇게 표현하지요?"하는 질문이었다. 평소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믿게하는 강력한 수단인 만큼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전작으로 머리가 아프던 중 후작은 내 심사를 뒤틀리게 했다. 그것은 <방자전>이 춘향이를 폄하했다는 남원골 사람들의 맥락이 아니라- 그날 한 목사님은 내 면전에서 자기의 소원이 주일 오후에 예배를 없애는 것이라 했
 다. “목사 남녀 중학생 성추행”“목사 자기 부인의 살해”이 타이들은 요즘 언론 매체에 등장한 엽기적인 목사들의 행위에 대한 폭로 제목들이다. -“문명은 그 자신이 배설하는 오물로 더럽혀 있다”는 WR 잉의 지적처럼 빌미를 제공한 개신교 내에서 정체성 문제였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우민호 신인 감독은 교회와 목사님을 직접 사용했으나, 90년대 <투갑스>에서 비리경찰과 2002년 <공공의 적>을 통해 새 스타일의 경찰 캐릭터를 탄생한 후 <실미도>를 통해 근 현대사 속의 실타래 일부를 풀어 천만 관객 신화를 이끌어 낸 강우석
 감독은 기도원과 목사도 아닌 기독교의 길과는 질적으로 다른 캐릭터 유목형을 통해 "구원과 파멸"에 대한 욕망을 다뤘다. 영화의 추상적이며, 원론적인 현실비판은 상대적으로 세속사회의 형체에서 사람들에게 복음화하려는 노력에 대한 저항의 논점으로...복음을 율법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를 초월해(혹 자신 마음속에) 존재한데 반해 전적으로 이 세상 안에 있다는 자유의 가능성을 비친다. 자유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내 삶을 결정하는 것이다. 복음보다 율법이 우리생활의 기반이 될 때 선택과 자유를 방해한다.

 복음은 교회 설교의 메시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문화적 배경이나 사회적 규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이 그리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는 특권이나 필요에 직면케 하는 초정인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 신사참배나 광주 민주항쟁 때 보였던 교회들의
 변증법적 관계는 역사 속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이끄시는 한분을 만나게 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사회생활을 이성이 아닌 폭력을 할까요.”그만의 스릴러 화법으로 대중을 휘어잡은 강우석 감독은 <이끼>에서
 유목형의 부탁으로 기도원에 간 천용덕이 성경 출애굽기 21:24-25를 읽고 그 위에 쓰인 명단을 찾아 복수(폭력)를 한다. "거지에게 침대를 주면 거지는 보답으로 이를 줄 것이다." 레이 말처럼 폭력의 정당성을 성경으로 왜곡시키는 인간의 모습을 완연히 보여준 것이다.

“아 돈이여! 얼마나 많은 슬픈 일들이 돈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가?”가치기준마저 뒤흔들려지며 탐욕의 인간들의 적나라한 모습...스멀스멀 썩어들어가 이제 썩는게 무엇인지도 분간하기 힘든 그 마을은 이끼의 그것을 닮아있다. 겉으로 조용한 마음을 간직한
 그 음습함과 우주에서도 살아남을만한 강한 이끼의 생명력을 닮은 인간 본연의 그 추악함, 비단 그 마을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사는 곳엔 이끼가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한 이끼의 본연의 모습을 까발려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느끼는 건
 관객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까. 사이코패스 범인과 딸을 찾는 혈투의 반전에서 자기의 손으로 아내를 죽이는 설정은 유괴라는 소재를 통해 부성애를 전달하는 메시지로 감정의 몰입이
어렵지만 좀 더 살피면 유괴범이나 형사의 두 범죄자 모습에서 공통점을 읽어낼 수 있다.
 
 돈 속에, 돈 자체 속에 그리고 돈을 취득하고 소유한다는 그 속에 무엇인가 비도덕적인 점이 있음을...기도원을 장악한 형사 밑에 세 사람(이끼 밑에 이끼)은“돈은 훌륭한 하인이기도 하지만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는 프랭클린의 말에 너무나 적합하다. 그리고 주인공들
 의 삶에서 악은 진정한 형태가 없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를 표류하다가 흔들이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스며든다. 마지막으로“죄를 저지르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이지만 자신의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악마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특히 <이끼>의 마지막 반전의 미묘함은
 교회 조직에 있어 여전도사들의 역할이 가톨릭 수녀들과 대비되었다. 아! 두렵다. 내가 살고 있는 당대에 대중문화의 꽃 영화가 저렇게 개신교에 대한 미학을 그려내는데 이후 나의 남기고 간 공간의 문화를 지각이 뛰어난 광기의 천재들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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