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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ㄱ’자 예배당-김제 금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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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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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교회 전경

금산교회는 전북 김제 모악산 기슭에서 1905년 테이트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4년 말, 미국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최의덕)는 전주에 선교기지를 두고 정읍 땅을 가려고 모악산 자락을 넘어서 금산리를 통과하게 되었다. 말을 타고 가는 선교여행이라 말이 쉬어가는 마방에서 마방 주인이기도 한 조덕삼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의 사랑채에서부터 시작된 교회가 금산교회의 시초이다.

▲ 이자익 목사 금산교회를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조덕삼장로와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 목사이다. 이자익은 주인 조덕삼, 그리고 박화서와 함께 1905년 10월 11일에 세례를 받았다. 교회가 성장해서 교인이 50명쯤 되었을 때 장로를 피택하게 되었는데, 교인들이 모여 투표한 결과 놀랍게도 지방의 유지이며 김제부자이고 금산교회 재정을 모두 감당하고 있던 주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의 마부(머슴) 이자익이 최고득표를 얻어 장로로 피택되었다.

이때 교회는 술렁거리며 걱정을 하였다. 그러나 조덕삼은 교회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교인들에게 "나는 이자익 장로님을 잘 받들어서 교회를 더욱 잘 섬기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자 온 교회가 대 환영을 하면서 조덕삼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래서 집에서는 주인과 마부(머슴)의 관계로, 교회에서는 평신도와 장로로 두 사람 모두 성실히 자기 본분을 감당했다.

 

 

▲ 조덕삼 장로 후에 조덕삼도 금산교회에서 장로가 되었고, 이자익을 평양장로교신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하게하였다. 그리고 이자익이 신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후에는 다시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머슴 이자익은 담임목사로 주인 조덕삼은 장로로 교회를 훌륭하게 섬기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이자익은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역사에 재임한 총회장도 없는데 총회장을 3번씩이나 역임하는 등 장로교회사의 입지전적의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는데 그를 키워낸 인물이 바로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머슴을 받들며 교회를 섬겼던 조덕삼 장로이다. 그는 머슴을 장로로 섬기고 자기의 재산을 들여서 공부를 시키는 등 역사에 길이 남을 김제의 훌륭한 인물이었다.

1908년도에 건축된 금산교회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북지방문화재 제136호로 등록된 “ㄱ자”로 된 예배당이다. 처음에는 ‘팟정리교회’ 혹은 ‘두정리교회’로 불렸고(두정리(荳亭里): ‘팟정이’의 한자표기), 금산교회라는 이름은 1930년대 이후에 붙여졌다.

금산교회는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한국식과 서양식의 특징이 병존하여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보여준다. 5평 정도의 강단은 2단으로 꾸며져 결과적으로 3층 구조인데 한국 전래의 제단구조이면서 동시에 뜰-성소-지성소로 이루어지는 성막의 3중 구조를 연상케 한다. 금산교회당 안에는 초대 교회 때부터 사용하던 풍금과 강대상과 강대상의 의자 등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ㄱ’자 교회당은 그 골격이 100년 동안 조금도 손상 없이 잘 보존되어 있으나, 2001년 봄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을 이루어 더욱 완벽하게 옛 모습을 찾게 되어 있다. 금산교회는 현재 전북 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재지 :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291 (Tel. 063)548-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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