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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병촌교회와 66인 순교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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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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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촌교회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66인 순교기념탑.

충남 논산 병촌리에 위치한 병촌교회는 1935년 5월에 설립되었다. 1943년에 일제가 교회를 폐쇄시키기도 했으나 가정교회로 신앙을 지켜온 성도들이 해방과 더불어 교회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교회재건의 기쁨도 잠시, 6.25 한국전쟁으로 한 교회에서 66명이 순교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촌리 일대에서 공산당에 맞서 처참히 죽어간 병촌교회 순교자들은 남자가 27명, 여자가 39명, 신구약성경책 66권의 수와 똑 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공산당들은 ‘기독교 신앙을 버리면 살려 주겠다’고 겁박하며 더욱 잔혹하게 고문을 가하였다. 공산당의 강경책과 회유책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마침 미군비행기의 폭격을 틈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진 김주옥 집사는 그 후 지금까지 그들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며 증언하고 있다.

그때 상황을 돌아보면 1950년 9월, 국군이 밀려오자 공산당들은 퇴각하기 직전에 병촌교회 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몽둥이와 삽, 괭이, 죽창 등 원시적인 방법으로 무자비하게 구타 살상하고, 뒷산언덕 계곡의 구덩이에 한꺼번에 묻었다. 당시 우제학 집사의 부인 정수일 집사(당시 31세)는 시부모, 시동생, 아들, 딸, 조카 등 일가족 10명과 함께 둘러앉아 기도하고 찬송하며, 죽음 앞에서 오히려 “공산군은 패전하니 이제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며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자의 거룩한 길을 담담하게 맞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공산당에게 체포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김주옥 집사와, 붙잡히기 직전 어린 동생을 업고 도망친 김 집사의 딸 영광교회 김명호(당시 15세)사모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명호 사모는 “공산군은 한옥 대청집인 우리 집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았으며, 아버지를 비롯해 교회에 다니는 남자들을 잡아다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다행히 미군기가 폭격할 때 도망쳤지만 작은 아버지는 마을에서 다시 붙잡혀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산당은 어머니를 잡아다가 대청에 묶은 채로 높이 올렸다가 바닥으로 내리치면서 ‘천당에 가는 기분 어떠냐?’ 면서 조롱까지 하였습니다. 살생이 끝난 후 나중에 남은 사람들이 시신을 찾아 나섰는데, 온 몸에 피멍과 상처가 가득한 시신들, 눈과 팔이 빠진 시신 등이 이산 저산 구덩이에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차마 끔찍해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진술하고 있다.

 

▲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 소재해 있는 병촌교회 전경.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병촌리 집단순교사건은 6.25 당시 단일 교회순교사건으로는 가장 큰 규모이다. ‘면류관’ 모양의 순교자기념예배당 앞에는 기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66인 순교기념탑’(기독교대한성결교회 순교사적 제1호)이 서 있는데, 4개의 탑 날개는 성결교의 4중 복음을 상징하며 탑의 받침대에는 66명의 순교자명단이 새겨져 있다. 현재, 순교기념교회와 순교기념탑은 순교현장에서 떨어진 인근 마을에 위치하고 있지만 순교자들이 처참하게 순교당해 묻혔던 마을 뒷산과 골짜기가 정면으로 보이고 있어, 16세대 66명의 평신도 순교자가 보여준 고귀한 순교신앙과 순교정신을 생생히 느끼게 하고 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소 :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228 (병촌교회 담임목사 : 윤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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