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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한국기독교관문 백령도 중화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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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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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옹진군 백령도는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초기 기독교선교의 관문인 백령도는 19세기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1816년 영국함대가 서해안에서 해로탐사를 하며 백령도 중화동에 상륙하였는데 그 함대의 클리포드와 바실홀 함장이 처음 한문성경을 나누어주었다고 전한다. 이후 1832년에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선교사인 귀츨라프가 동인도회사의 함선을 타고 들어와 통상에는 실패하였으나 백령도와 어청도, 고대도 등을 돌며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1865년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중국에서 만났던 상인 김자평의 안내로 서북해안, 백령도를 비롯하여, 황해와 평안도를 두 달 동안 돌면서 답사를 한바 있고 이듬해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진입하다 좌초되어 박춘권의 칼에 순교를 당했으니,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서 순교한 첫 번째 선교사가 되었다.

백령도에 본격적인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1891년에 정3품 벼슬의 허득과 김성진 두 사람에 의해서였다. 허득은 진보적 개화 정치인으로, 기독교에 대하여 호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관군으로 동학란의 평정에 참여하였는데, 소래교회로 피난민이 모여드는 것과 소래교회에는 일본군, 동학군, 관군 등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고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나 백령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침내 1898년 6월, 허득과 김성진은 중화동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여 교회를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그리하여 허득은 장연군에 있는 소래교회로 달려가서 서경조를 만나고, 같은 해 10월에 서경조와 여자 전도사인 김씨 부인 등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한학서당에서 중화동교회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후 날마다 활기를 찾아가던 교회는 허득과 교인들이 소래교회를 짓고 남은 건축 자재를 지원받으며 마침내 1899년 초가 6칸(12평)의 아름다운 예배당을 세우게 된다.

백령도는 중화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활발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해병대 백령교회 등 13개 교회가 백령도 85%의 복음화율을 이루고 있다. 또한 백령도교회들이 힘을 모아 중화동교회 옆에 ‘백령기독교역사관’을 건립하고, 2001년 11월 20일 준공예배를 드렸다. 이로써 중화동교회역사,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교회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며 한편 최초 발을 들여놓았던 귀츨라프(곽식렵) 선교사와 최초순교자인 토머스(최난헌) 선교사 의 흔적 등 백령도 기독교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이처럼 백령도는 한국기독교의 관문이며 초기 한국선교의 중요한 무대였다. 또한 중화동교회는 백령도 교회의 모태가 되어 백령기독교역사관과 함께 110년의 기독교역사를 되짚어 보며 앞으로 초대교회신앙 회복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소 :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연화2리 (중화동교회 담임: 전응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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