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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전북완주 하리교회탄생과 순교자 임광호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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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진 장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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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광호(1923~1950)

황해도 신천군에서 출생한 임광호 전도사(1923-1950)는 만주길림성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월남했다. 1948년 3월4일 전북 완주군 와리교회에 부임하여 3-4명이 모이던 교회를 200여 명으로 부흥시켰다. 지역에서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와리의 토착 공산당들은 교회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점차적으로 아예 목회를 못하도록 각종 방해 공작을 폈다. 결국 임광호 전도사는 와리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그리고 6.25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인 1950년 4월16일, 와리장로교회 집사였던 백한나, 전경순, 유정례 씨와 함께 백한나 씨의 논에 천막을 치고 하리교회(기성)를 개척하고 6월 초순, 와리와 하리 중간지역에 건평 20평의 성전건축 기공식을 가졌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논밭에까지 찾아가서 성심껏 치료하는 그의 모습에 많은 주민과 청년들이 따랐으며 교회도 점차 부흥하였다. 이에 공산당은 그를 더욱 감시하며 기회만 있으면 끌고 가 온갖 말로 회유하거나 협박했다.

얼마 후 6.25전쟁이 발발했다. 가족과 성도들은 공산당들의 핍박이 계속되자 피난을 권했으나 임 전도사는 “목자가 양떼를 버리고 어디를 가느냐!”고 하였다. 8.15해방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을 두고 죽음의 38선을 넘었던 임 전도사로서는 신앙과 교회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회를 지키며 임 전도사와 성도들은 피난을 가지 않고 이제 막 시작한 성전건축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1950년 7월10일, 잠깐이면 된다는 공산당의 말에 임 전도사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끌려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사모는 수소문 끝에 삼례국민학교 치안대 독방에 갇혀 있는 그를 만났다. 임 전도사는 “걱정하지 마라. 곧 나가게 될 거다.”하며 오히려 성도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모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함께 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백한나 집사 등에 따르면 임 전도사는 감옥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켰으며, “예수만 안 믿는다고 하면 당장 살려준다.”는 협박에 오히려 “당신들도 예수 믿어야 산다.”며 자신을 고문하는 자에게까지 전도를 했다고 한다.

 


교회건축 중지와 신앙의 포기를 강요하는 고문은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 악에 받힌 공산당원들은 “이 놈은 총알도 아까우니 몽둥이와 괭이로 때려 죽여야 한다.”며 1950년 7월20일 저녁 6시경, 임 전도사를 포함한 몇 사람을 삼례읍 와리 월산리바위 밑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임광호 전도사 등은 순교했다. 신앙과 교회를 지키려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임광호 전도사는 당시 결혼한 지 4개월도 안된 신혼이었다. 홀로된 사모는 혼자 3년간 교회를 지키면서 유복자였던 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성남에 있는 은행동교회 임창희 목사이다.

교단의 분열과 교역자의 잦은 변동, 가난한 재정 등, 고초를 겪으며 표류하던 침체기에 하리교회는 삼례교회의 도움을 받아 건축기성회를 조직하고, 1962년 4월 2~4일까지 전주성결교회 이대준 목사를 초청해 부흥회를 하였다. 여기에서 모인 헌금 157,000원으로 총 건평 29평의 성전을 기공하여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공사비 부족으로 결국 공사가 중단된다. 이 때 건축이 중단된 것에 가슴 아파하던 하리교회 문형우 집사가 자신의 눈을 빼어 팔아서라도 성전건축을 완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예수병원을 세 번이나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멀쩡한 눈을 뺄 수는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하리교회 교인들의 순교와 눈물어린 헌신의 사연을 듣게 된 마두원(D.R. Malsbary) 선교사가 이 사실을 미국 기독교계 모 기관지에 기고하므로 기사를 읽은 미국 교인들이 99,700원의 헌금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모인 총119,774원의 헌금으로 성전의 외부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 집사의 간절한 소망과 헌신을 하나님은 외면치 아니하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다. 문형우 집사는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은퇴했으며, 아들 문사무엘 목사(전주지방, 아름다운교회(기성))가 대를 이어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희생과 헌신, 그리고 거룩한 순교의 터 위에 세워진 하리교회는 “가라 아니면 보내라.”는 선교표어 아래 선교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다. 한편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사업회는 임광호 전도사의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진영정을 한국기독교 순교자기념관에 보관하고 돌로 순교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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