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분류

성지순례 | 두암교회23인 순교자이야기

작성자 정보

  • 박경진 장로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마을에 위치한 두암교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빚어낸 참혹한 순교 현장으로서 23명의 순교자 합장묘와 기념탑이 순례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곳은 해방과 함께 정읍 천원교회의 지원으로 김용은 전도사가 1949년 1월 7일, 그의 모친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다. 단출한 기와집 가정에서 이웃사람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된 두암교회는 김용은 전도사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두암마을 전체가 예수 믿는 마을로 변하고 있었다.

6. 25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김용은 전도사는 임동선 목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인민군이 진주하면서 그 여파로 조용하던 두암마을에 공산당이 쳐들어와 비극의 피로 물들이게 된 것이다. 때마침 이때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을 빌미로 윤임례 집사의 가족을 반동분자로 몰며 성도들을 위협하고 예배중지 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런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았으며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다. 1950년 9월 하순경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은 더욱 거세졌고 이 과정에서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을 맞고 고부로 옮겨져 치료하던 중 우익인사들과 함께 희생을 당했다.

교회를 지키려는 성도들과 악랄한 공산당 사이의 접전은 그 해 10월 19일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몽둥이와 식칼을 들고 몰려온 공산당들은 성도들과 아이들까지 모아놓고 예수쟁이는 미 제국주의 앞잡이라고 미친개처럼 날뛰며 몽둥이를 휘둘러대며 살생을 일삼아 결국 윤임례 집사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으며 공산당은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에 모두 짚을 넣고 불을 질렀다. 불태운 재 때문에 며칠 동안 우물물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날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모두 학살되었으며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과 김용은 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씨 등 23명이 순교를 당했다. 시신 수습과정에서 본 윤임례 집사는 무릎 꿇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음 앞에서도 기도하다 칼에 찔려 무참하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함 같이 순교자의 피는 두암교회와 한국교회선교역사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동생 김용칠 목사 형제는 성결교단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단발전에 크게 헌신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 명이 넘는 목회자가 여기에서 배출되기도 하였다. 두암교회는 불에 타고 성도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쉽게 복구되지 못하다가 1964년 두암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의 집에서 주일학교를 열면서 재건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타버린 교회는 1966년에 비로소 재건을 시작하여 가매장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23인순교자 합장묘를 만들게 되었으며, 1977년에는 그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며 “23인의 순교자기념탑” 이 세워졌다.

▲ 박경진 장로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02)2230-5151 이 탑은 4각십자가 모양으로 건립되었는데 4각은 성결교회의 4중 복음을 상징하며, 그 아래 돌을 쌓은 것은 23인순교자를 상징하고 탑 꼭대기에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횃불이 조각되어있으며 하단 정면에 봉헌문헌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23인의 순교자명단이 조각되어져 있다.

소재지 : 전북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316 두암성결교회(담임:홍용휘 목사)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