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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중(주안장로교회위임목사)주승중(주안장로교회위임목사)

1. 들어가는 말: 예배당에서의 주일 예배

우리는 지금 한국교회 역사상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이 아니라 가정에서 또는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님들이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진실로 모이기에 힘쓰고, 모이면 예배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과 유산을 지닌 교회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작금의 상황은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상황아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순간에도 한국교회는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 맞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중에도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내용을 볼 때 완전한 진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19389월 장로교회를 마지막으로 한국의 모든 공교회들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라고 결정하였습니다. 그 순간을 미국 UCLA의 교회사학자인 옥성득 교수는 사실 바른 의미에서 주일성수는 1939년에 무너졌다고 지적합니다. 이후 조선의 모든 교회들은 해방이 될 때까지 매 예배 때마다 궁성요배, 순국장병에 대한 묵도, 그리고 황국신민서사(일제가 국민정신 함양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맹세)를 한 후에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먼저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상 앞에 절하지 아니한 많은 개인과 공동체는 혼자서 혹은 숨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개인들의 예배는 끊어지지 아니하고 계속되었지만, 한국교회의 공예배는 1939년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객관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도 예배를 멈추지 않았다는 말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일수도 있으나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그 본래의 의미로는 바른 말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전쟁 중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왜 설교의 시작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에 모이는 것을 중단하고 영상을 통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에 대해 일부 성도들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전염병이 무서워 교회에 모이기를 포기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까지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설교를 듣고 보는 많은 분들이 이런 고민과 질문을 품고 계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회 전체의 역사를 보면 어떨까요? 사실 종교개혁자들이 활동했던 15-16세기는 유럽에서 페스트라고 불리는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입니다. 그때 교회는 어떻게 하였는지 소개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장신대 교회사 교수인 박경수 교수는 흑사병과 종교개혁자들이라는 글에서 종교개혁가 루터의 흑사병에 대한 입장을 소개하였습니다. 1527년 루터는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소책자를 썼습니다. 당시 전염병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이 병은 하나님이 내린 형벌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 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치료약의 사용도 반대했고, 흑사병에 감염된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분명히 말합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야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저절로 나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가?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루터가 하는 권면의 말씀은 꼭 오늘 이 시대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약을 먹으라. 집과 마당과 거리를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구별하라...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다. 약을 조제하여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여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 불청결로 이웃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아멘, 저는 루터의 이 고백이야말로 오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고백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많은 한국교회들이 주일 예배를 모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부족하거나 전염병을 과도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결정은 하나님, 저희는 모일테니 하나님께서 저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성도님들과 이웃들을 향해 내린 신앙의 결단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가운데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문제인 주일성수와 주일성수를 위한 장소인 성전에 대한 고민들을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들과 관련하여 그 누구에게 보다도 예수님께로부터 그 답을 듣기를 원합니다.

 

2. 본문의 배경: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예수님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과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안식일 논쟁 과정 가운데 일어난 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이 회당은 아마도 가버나움의 회당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장인 막 223-28에 소개되어 있듯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문제 삼고,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느냐?”(2:24)고 비난을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다윗과 그의 수하들이 시장할 때에 제사장의 진설병을 먹은 것을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님”(2:27)을 지적하셨고,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2:28)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자 분노한 바리새인들은 다시 안식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오실 때, 예수가 또 안식일을 범하는지를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2절 말씀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하여 주시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것으로 보아 손 마른 사람을 회당에 데려온 것은 그들이 파놓은 함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침으로 율법을 어긴 자로 고발을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의사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사람은 오른 손이 마른 상태였습니다(6:6). “마르다는 단어는 신체의 일부가 굳어지는 상태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아마도 그는 중풍병으로 그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학자 바클레이는 초대교회 문서를 인용하면서 이 사람은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께 나와 이렇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예수여 나는 손으로 생계를 꾸려 가는 석공입니다. 청컨대 나의 손을 건강케 회복시켜 주시사 나에게 음식을 빌어먹는 수치를 면케 해 주소서그리고 예수님은 여느 때처럼 자신에게 나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그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에 의하면 생명이 위독한 경우에만 안식일의 법이 면제된다고 규정되어 있었고, 예수님도 그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 손 마른 사람의 경우는 당장 생명에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안식일이 지날 동안 기다린다고 해서 병이 악화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지금 예수님의 행동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작심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이런 유명한 도전을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3:4)

이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면, 선을 행하기를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악이라고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정곡을 찌르는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고, 그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3:6).

 

3.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교훈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의 근본정신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밀밭에서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일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공격하였을 때에도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죄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7-8)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라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의 근본정신이 규칙과 전통을 지키거나 제사를 얼마나 절차에 맞게 드리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자비긍휼을 행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이런 근본정신을 무시한 채,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전통과 형식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로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구약성경에 의하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시고, 그 쉼의 날에 우리를 초청해 주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20:11). 그리고 더 나아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5:14-15)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한 마디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신 모든 창조구속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안식에의 초대에 동참하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이 날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의 자비를 본받아 이 땅에 진정한 안식을 가져오려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병자를 치유하고, 외로운 자들을 위로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등의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4.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

그리고 구약시대부터 지켜지던 이 안식일은 우리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주일로 변화되었고, 우리는 지금 구약의 안식일이 아닌 주님의 부활의 날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참된 안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사망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활케 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새로운 창조사역구속사역을 이루신 주님의 날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출애굽의 구속사역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이었듯이, 신약의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새창조(New Creation)(십자가의) 구속사역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이어지며, 우리는 주일에 하나님의 재창조와 구속사역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적인 안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주일에 선을 행하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일은 고장 나고 병든 세상을 고쳐 다시 한 번 생명이 충만한 세상... 즉 진정한 안식을 가져오려는 예수님의 역사에 동참하여, 병자들을 치유하고, 외로운 자들을 위로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등의 선한 일을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인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은 주일성수에 대하여 신성한 주님의 날에는 ...은혜로운 주일 예배를 위하여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기도하고...예배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는 독서와 명상과 설교를 통해 주신 말씀을 복습하는 가운데 쉬어야 하고, 더 나아가 병든 자의 심방과 자비의 손길을 펼치는데 함께 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주일의 기본정신과 가정에서의 영상예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이렇게 안식일의 기본정신과 또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역사상 경험해 보지 못한 초유의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많은 교회들이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인터넷과 영상을 통해 가정에서 또는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이 비상 상황으로 인하여 많은 의문들과 비판이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이런 식으로 드려도 되는가?”, “바이러스가 돈다고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주일 예배를 유보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들에게 대해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본대로 예수님은 안식일에 밭에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제자들을 두둔하기도 하셨고, 또 많은 병자들을 안식일에 고치셨습니다. 이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항의하듯이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일 안식일에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12:11) 질문하셨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고 그런 일들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참된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예배), 그리고 이웃에게 을 행함으로 그들의 생명을 살리는데 있다(이웃사랑)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바로 성경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22:37-40).

그러므로 영남신학대학의 김동권교수가 온라인 주일 예배에 대해라는 짧은 글에서 바르게 지적하였듯이 오늘 한국교회가 온 회중이 함께 교회에서 모이는 대중(주일)예배를 잠시 유보하는 것이 이웃의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라면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정확하게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대구지역 신천지 이단들의 경우를 통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고 있듯이 대중집회가 바이러스를 확산하는 슈퍼 전파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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